서울 김포공항 ▶ 제주 국제공항
지인이 제주에 한달살이를 하러 간다기에, 슬쩍 그 체험을 경험해보고자 서울에서 제주로 향합니다.
분명 전주에 미리 마무리해두었던 작업이 당연히 한 번 더 제 바짓가랑이를 잡은 덕에 출발 당일 오전부터 점심시간까지 부랴부랴 작업을 마무리합니다.
평일이라 비행기는 14,000원 언저리로 저렴했습니다.
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경험이 있어서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더니 시간이 넉넉히 남았습니다.
하지만 1번 게이트는 먼 곳이죠.
무거운 가방을 들고 왜 캐리어를 들고 나오지 않은 걸까, 자신을 반성하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없어진 줄 알았던 비행기 멀미 덕에 여행에서 읽으려고 큰맘 먹고 구매한 돈키호테 양장본을 '서문'까지 읽고 집어넣었습니다.
서울날씨는 꽤 쌀쌀해서 반팔 위에 카디건과 청자켓을 입었으나 비행기에서 멀미를 하는 덕에 그 옷들이 모두 짐이 되었고
그걸 끌어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멀미하는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옆자리 앉은 분에게 가방을 내려달라 부탁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공항에 마중 나온 지인을 만났습니다.
위탁수하물을 안 하면 바로 나올 수 있어서 웬만하면 다 들고 타는 편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공항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길.
지인은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저는 택시 시트에 기대 누워 땀을 식혔습니다.
멀미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제주 국제공항 ▶ 곽지 해변 산책
지인의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고 보니 숙소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좋았습니다.
사실, 사진과 똑같거나, 사진보다 좋은 숙소는 은근히 찾기 힘듭니다.
다들 광각렌즈와 온갖 사진 기술을 동원해 화장해주는 앱 수준으로 방을 바꿔놓습니다.
아니면 서울의 부동산 앱에 찌든 제가 문제일지도.
어쨌든 해가 잘 들고 필요한 것은 모두 있는(심지어 옷을 걸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조금 감탄했습니다. 옷을 걸 수 있는 곳이 마련된 곳은 별로 없다시피 해서 말입니다.) 숙소는 혼자 있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옆방에 방을 빌려 나도 혼자 있어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자마자 옆방에 나 혼자 쓸 방을 구하겠다고 하면 서운해할 지인을 위해 다음에 오면 나도 방하나 얻어서 있겠다,라고만 말했습니다.
▼나 혼자 한 번도 오고 싶어 지는 숙소, 어떻게 생겼나?
잠시의 휴식을 취하고는 원래 계획대로 바닷가로 향하기 위해 짐을 챙겼습니다.
오늘을 위해 지인이 구매한 돗자리와 이번 기회에 녹음하기 위해 챙겨 온 녹음기, 못다 읽은 책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복병은 바로 출출한 나였습니다.
멀미 덕분에 깨닫지 못했지만 출발하기 전까지 작업하다 파일을 넘기고 온 저는 점심을 굶은 채로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인이 알아둔 근처 햄버거 가게로 향합니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 거하게 먹기는 좀 그렇고, 빵 하나 정도로 때우기에는 배가 너무 고파서 선택한 햄버거.
햄버거는 저에게 식사라기보다 무거운 간식 정도의 개념입니다.
물론 입이 작아 큰 버거 종류 (예를 들면 버거킹 와퍼나 수제버거들. 왜 수제버거는 항상 속을 꽉 채워서 한입에 못 넣게 만들까.)를 못 먹어서 식사로 치지 않는 것도 영향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선호하는 건 롯데리아 버거입니다. 네 맞습니다. 작아서요.
입이 작은 데다 만성비염으로 코가 막히면 입안 가득 음식을 넣는 게 바로 숨 막힘으로 이어진다는 것쯤은 알게 됩니다.
하지만 배가 너무 고팠던 저는 당연히 수제버거집일 것이라는 것은 머릿속에 지운채 지인과 가서 졸랑졸랑 햄버거 세트를 포장해옵니다.
▼무슨 버거 먹었는데?
곽지 해변 산책 ▶ 곽지 몬스터 살롱
어찌 되었든, 첫끼만큼은 해변에서 하고 싶었기에 햄버거를 테이크아웃해서 투썸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함께 해변으로 향합니다.
가게에 사람도 많고 좁아서 테이크아웃은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게다가 4월의 제주도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완벽한 날씨를 지녔기에 안에 있는 것이 손해입니다.
멋쟁이 거대 돗자리 (이 정도로 큰 줄 몰랐으나 왜 그리 무거웠는지 이해가 갑니다. 무려 2kg 정도 했던 원수 돗자리)를 떡하니 펴고 나니
지인이 근처에 아는 사람이 왔다며 자리를 뜹니다.
저는 4m가량 되는 거대한 분홍 돗자리에 혼자 앉아 햄버거를 먹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살짝 추워지기는 했으나 미리 담요까지 준비했으므로 단단히 준비하고 본격적인 먹방을 시작합니다.
곽지 몬스터 살롱 ▶ 곽지 해변
사실 개인적으로 대비가 낮은 회색빛 도는 사진을 좋아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그런 빛깔이 나오는지 아직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에 큰 욕심이 없는 편이나 여행에 다녀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내가 당시에 보고 느낀 것들이 내 조악한 사진 실력으로 빛이 바래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본 것은 더 아름답고 더 선명하고 더 웅장하고 더 깊은 것이었는데,
나의 서투른 실력으로 그 순간을 담아내고 나중에 보며 추억하면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보다 눈앞의 사진에 익숙해져 종래에 내가 본 것은 이런 것이었다, 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나의 일상 또한 누군가에게는 떠나고 싶은, 겪어보고 싶은 여행일 수 있는데, 일상의 사진은 더더욱 개차반이 기도 합니다.
사진첩은 대부분 업무처리를 위한 사진이거나, 캡처인 경우가 많습니다.
감성은 어디로 도망간 걸까요.
감성도 기술과 같아서 수시로 다듬어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지금 제가 쓰는 글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먹방을 거의 끝내갈 때 즈음, 지인이 돌아왔습니다.
먹던 것을 정리하고 나니 너무 뜨거워서 먹을 수 없었던 아메리카노는 찬 바닷바람에 적당히 식어 먹기 좋은 온도가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입속의 고기 냄새를 아메리카노로 헹궈 흘러내린 나의 표정에 지인이 웃습니다.
지인은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카페인이 주는 행복을 모르는데, 만족스러운 커피를 먹는 저를 보면 저렇게 맛있나, 싶어서 그렇답니다.
대충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고 나니 해가 어느 정도 내려앉아 책 읽기는 포기하게 됩니다.
이럴 줄 알았지.
하지만 녹음은 할 수 있다는 마음에 부랴부랴 마이크를 설치합니다.
사실 바다는 바이크가 향하는 반대편인데 바닷가에 사람이 많아서 반대쪽으로 돌려두었습니다.
멀리서 나는 바다, 사람 소리 정도의 엠비언스를 위해서입니다.
마이크를 설치하는데 지인이 탐을 냅니다.
지금의 소리를 녹음하고 나면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합니다.
지금 느낀 감정과 우리가 나눈 대화를 간직하고 싶어서랍니다.
소리는 훌륭한 감정 전달 매개체가 됩니다.
물론 시각적인 것도 훌륭한 매개체가 되지만 소리는 좀 더 주관적인, 그러니까 그 소리를 통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불러내기에 좋은 매개체입니다.
같은 바닷소리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엄마와 어릴 적 바닷가를 노닐던 경험을, 누군가에게는 헤어진 전 애인과의 겨울바다를, 우리에게는 깔깔거리며 모래바람 부는 바닷가에 누워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듯이.
녹음을 누르고 바닥에 드러눕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바깥에서 하늘을 보고 완전히 위로 누운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앉아서 올려다본 적은 몇 번 있지만, 누워서는 그런 적이 언제였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앉아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완전히 무방비가 되는 듯한 기분.
낯선 곳에서 잘 눕지 않는 이유는 편치 않아서, 예의가 아니니까, 등의 의미도 있겠지만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 순간 가장 취약한 배와 목, 얼굴은 너무 쉽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밥도 먹고 따뜻한 커피까지 먹은 저는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등을 대로 누웠습니다.
경계심을 내려놓고 등을 땅에 맡기는 순간, 하늘이 내게 늘어뜨려 준 것은 수많은 구름이었습니다.
노을을 보러 간 해변이었는데, 수많은 구름들이 하늘을 빽빽하게 막아섰습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큰 덩어리의 구름이 하늘을 죄 가린 것이 아니라 여러 겹, 여러 색의 구름들이 각자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하늘에 여기저기 몰려든 느낌이랄까.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마치 아크릴 물감을 매번 색을 바꿔 덧칠하고 덧칠한 것처럼 여러 겹, 여러층의 구름들이 하늘에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과 바람을 타고 약하게 넘어오는 바닷소리.
너무 신기하게도, 바닥에 누우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지인과 누워서 오래 이야기하다가 물 마시려고 일어나는 순간, 귀에 온갖 말소리들이 몰려들어왔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모래언덕 안쪽에 누워있던 덕분에 말소리들이 위로 날아가 모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인과 누웠다 앉았다 하며 자연의 신비를 초등학생처럼 신기해하며 깔깔거렸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마피아, 아니 연쇄 폭죽 범이 나타납니다.
퇴근 후 날아오느라 늦게 합류한 다른 한 명까지 총 세명이 다시 해변으로 향했습니다.
어제도 폭죽놀이하다 손을 덴 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근처 편의점에서 폭죽을 사서 바닷가로 향합니다.
혹시나 쓸만할까 싶어 마이크까지 세팅했지만 폭죽 소리를 우습게 본 저를 비웃듯, 처음부터 끝까지 피크가 터져서 한 개의 소리도 건질 수 없었습니다.
바닷가에서 1분 정도의 불놀이를 즐기고 동영상을 찍던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합니다.
-다 쓴 폭죽은 폭죽 구매한 곳에 가면 버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닷가에 그냥 버리지 말고 조금만 더 걸어서 가져다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안 그러면 바닷가에서 폭죽 금지가 되어 버릴 테니까!
▼폭죽은 어디서 샀어?
무사히 폭죽의 잔해를 치운 저희는 폭죽 쓰레기를 버리러 간 편의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야식을 바리바리 싸서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숙소에서 차례로 씻고 잠들 법도 한데 으레 여행 첫날이 그러하듯 상기됨과 불장난의 흥분이 피곤함을 이겨내어 늦은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한 명이 OCN을 틀면서 모두 영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졸려도 잠들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러 온갖 원망을 하면서도 광고시간까지 화장실도 못 가는 웃픈 해프닝으로 첫날이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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