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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잡식성/Y] 내 이름은 피라예 - 자난 탄 (2018.04.24)

Jyevi 2021. 7. 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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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피라예] 자난 탄    

 

 

내 이름은 피라예

기다리면 언젠가 반드시 희망이 찾아올거야!터키 국민들이 사랑하는 작가 자난 탄의 대표작 『내 이름은 피라예』. 동서양의 접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접점, 근대와 현대의 접점에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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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셰리반에게 묻는다.
"네."

셰리반은 하심의 눈을 피하며 말한다. 우리는 짐가방을 잠근다.
나는 우리가 남겨두고 가는 것들을 한 번 더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집을 둘러본다.  내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 모든게 다 내가 여기서 한때 살았던 삶의 일부이니 여기 남겨놓는 게 옳다.
그리고 열쇠를 하심에게 건넨다.

"이제 당신거예요. 이제 이 집도, 이 안의 그 어떤 것도 내겐 필요 없어요."

                              


 

이스탄불 여행을 가기 전에 읽은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여행갈때, 여행지 출신의 작가가 쓴 작품을 한 개 이상 읽고 가려고 노력합니다. 지역의 문화나 지명, 지역에 대한 현지인들의 의미 등을 잠깐이나마 살펴보기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SNS 등을 검색해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서울, 이라고 검색해서 서울 사람들의 삶이나 감정, 우리가 가지는 포차에서 오는 감성 등을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렵듯이 해외도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소설은 작가가 좀 더 깊게 생활을 표현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캐릭터들이 좀 더 생기 있게 활보할 곳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의 지명을 이용하고, 감성, 사람들의 성격이나 날씨 등을 마치 내가 그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줘서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허둥지둥 어색하기보다 '아, 여기가 거기구나'라고 생각하게 도와줍니다.

저는 이스탄불에 가기 전에 '내 이름은 피라예', '이스탄불의 사생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읽었습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려고 했는데, 저 세 권을 보고는 시간이 없어서 가게 됐습니다.

 

 


 한 줄 평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여자의 신파 스토리? 국산인 줄 알았더니 수입산이었던 스토리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죠.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신파 스토리도 형제인 줄 몰랐습니다.

 

주인공인 피라예는 부유한 집에서 공주님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유명한 '신여성'입니다.

똑똑하고 아름다우며 집안도 좋은 그녀는 억압된 윗세대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여자들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학에 가서도 단연 눈에 띄는 그녀는 남학생들의 끊임없는 대시를 받습니다.

하지만 피라예는 그녀만의 기준이 있고 아무나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다, 하심이라는 남자를 만납니다.

집안이 좋고 잘생기고 유한 남자. 마치 운명 같죠. 결국 그녀는 그를 따라 시골로 내려갑니다.

치과의사가 되겠다던 꿈도 포기하고 그를 따라갔는데 시골의 경직된 분위기는 도저히 적응되지 않습니다.

남아선호 사상, 숨 막히는 시어머니, 부부의 침실에도 아무 때나 들어오는 시어머니와 아이를 1년 뒤에 낳기로 했는데도 들어오는 압박. 부모한테는 한마디도 못하는 남편.

그녀는 결국 딸을 낳았지만 딸을 낳았기 때문에 외면을 받고 남편은 결국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치과의사가 된 그녀가 성공하자 질투까지 하고 결국 폭력까지 행사합니다.

공주님에게 걸맞은 남자였던 왕자님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피라예는 결국, 딸을 데리고 남편을 떠납니다. 그게 위에 적어둔 구절입니다.

 

이안의 그 어떤 것도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

 

 

 

책을 읽고 놀랐습니다. 한국 드라마 대본을 가지고 쓴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윗세대의 결혼생활과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신여성, 남아선호 사상, 부부관계에 참견하는 시댁, 그중 시어머니. 단골 소재들입니다.

저는 신파극을 싫어해서 드라마도 잘 안 보는데 그런 저도 참고 볼만하게 할 만큼 글이 좋습니다.

번역체다 보니 작가의 진짜 필력이 좋다, 문체가 좋다,라고 하기에는 정확하지 않지만 신파와 뻔한 내용임에도 책을 끝까지 읽게 했습니다.

사실, 행복하게 살던 여자가 사회에서 왕자님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고통당하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을 찾아 떠난다, 이 정도는 모두들 알 수 있는 뻔한 스토리입니다.

처음에는 신여성, 자유, 평등하면서 정작 자신은 남자들을 이리저리 재는 그녀의 모습이 참 이중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조건에 맞는 잘생긴 남자 하심에게 넘어간 것도 말이죠.

 

하지만 그건 제가 지금 세대, 나의 지역,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사회분위기와 교육 수준, 어릴 때부터 듣던 말들 뿐만 아니라 피라예가 살던 지역, 남편 하심이 살던 지역, 그들의 종교와 문화에 기인한 사회적 기준 등을 고려해 스스로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 소설로 어떤 것을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토리 자체보다 다른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건 잘못됐다, 무슨 이런 걸 멍청하게 생각을 못하지, 왜 이 여잔 이곳에서 도망치지 못하지 등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롯이 내 기 준 대로였다는 것입니다. 소설을 쓴 작가가 묘사한 시대와 지역, 문화와 풍습 등을 내 기준으로만 이해해니 소설 등이 이상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이걸 깨닫고 나니 내가 한심하다 생각했던 여자 주인공은 사실,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나름의 노력을 했던 사람이었으며 결국 성공해낸 희망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냥저냥 뻔한 산파극이 아니고 말이죠. 과연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녀만큼 노력하고 있는가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단순 비슷한 상황을 보지 않고 노력의 강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독서는 이처럼 가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점을 보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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